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방”, 물리적 공간의 의미이건 추상적인 의미이건 자기만의 방은 그 공간 속에서 나의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각종 매체와 사람들의 간섭 없이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는 그런 공간을 의미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에서는 특히 여성은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작가의 생각일까.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자신의 어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기를 꺼려하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을 추스를 수도 있고 주위를 둘러보고 어디만큼 가고 있는지 어디까지 가야하는 지 차분히 자신과 주위를 살펴볼 수 있는 그 곳, “자기만의 방”은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이자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되어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 주었다.

 

“자기만의 방”, 물리적 공간의 의미이건 추상적인 의미이건 자기만의 방은 그 공간 속에서 나의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각종 매체와 사람들의 간섭 없이 오로지 나만이 존재하는 그런 공간을 의미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에서는 특히 여성은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작가의 생각일까.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자신의 어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기를 꺼려하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을 추스를 수도 있고 주위를 둘러보고 어디만큼 가고 있는지 어디까지 가야하는 지 차분히 자신과 주위를 살펴볼 수 있는 그 곳, “자기만의 방”은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이자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되어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 주었다.

그 보여지고 싶지 않은 그 방을 때로 엿볼 수 있을 때가 있다. 아마도 “나만의 방”도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들키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은 뒷모습을 통해서였다. 앞모습에서는 제스처, 웃음, 수다, 여성들의 화장, 멋진 의상, 악세서리 등의 다양한 장치들로 자기만의 방을 숨길 수 있다. 그러나, 목선을 타고 등으로 이어지는 선들은 개개인들이 지나 온 삶의 굴곡과 무게를 그대로 담아내어 보여주기에 숨길 수 없는 진실의 순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어머니나 아버지와 같이 어느 정도 삶을 살아 온, 혹은 견뎌온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그 선들의 무게감은 어린아이에서 발견하게 되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러한 사람들 혹은 그런 분들의 글이나 사진, 작품 등에서 영감을 받곤 하였고, 그 뒷모습의 실루엣에서 작품이 시작되었다.

“자신만의 방”을 자신도 모르게 찾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깊은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 인해 휴식이 필요할 때이거나, 혼자서 견뎌 내기 힘든 순간을 위로하기 위하여 시간이 필요할 때 일 것이다. 그 순간의 해석에 있어 근본적으로는 남녀 차이가 있지는 않겠으나, 작가는 삶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마주치는 무기력함을 견뎌내고 있는 여성들의 슬픈 뒷모습에 공감하며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 감정의 흐름과 보여지길 꺼려했던 진실의 순간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두 팔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는 것. 웅크리는 것. 뒤돌아 누운(돌아누운) 것. 어딘가에 어깨를 기댄 것 등은 그 모두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행위들인 것이다. 나를 환기시키고 내가 살아갈 힘을 내기위해 위로하는 시간. 어쩌면 작가는 타인의 그런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안의 것을 들춰내는 용기를 내어봄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토닥여주는 그런 “자신만의 방”의 의미로써 표현 작업을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가 위안을 느끼게 되는 것은 비단 작가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순간은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아니며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한 치유이자 재생의 과정이므로, 비록 캔버스는 그 슬픔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서 공감과 위로와 함께 새로운 의지와 희망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게 되었다.

표현의 수단

표현의 수단으로는 캔버스에 두터운 마티에르로, 소외감. 무기력. 힘겨움에서 오는 복잡하고 정돈되지 않은 감정의 부스러기들과 닮았다. 감정이라는 것은 늘 반복되고 숨었다가 곧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는 습성을 지녔는데, 겹겹이 쌓아올려 숨겨진 감정의 색들이 다시 드러나게 덮힌 물감들을 긁어내서 안의 색들을 돌출시키는 작업은 그 과정까지도 감정과 닮은 것 같다. 정밀한 테크닉보다 감정의 선을 나타내는 추상을 추구하면서 부분적으로 형태에 의지하고 있으며,

주로 작가 나이 전후의 젊다 혹은 늙었다 할 수 없는 여성의 모습은 작가로서도 가장 잘 공감할 수 있고 작업 자체가 작가 스스로가 위로를 받는 “작가만의 방”이 될 수 있게 해 주었다.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점으로, 선으로, 면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다양한 컬러들이 시각적 울림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과장된 슬픔이나 거창한 고뇌가 아닌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감정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처절하고 비참하게 표현하려 애를 썼지만 그것은 작품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마이너스 효과로 여겨졌다. 다소 굽은 뒷모습이 이미 슬픔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완의 여백처럼 모두 표현하지 않고도 충분히 표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앞으로도 사람의 감정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되 조금은 더 유연하게 주제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주제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할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다양한 재료에 도전함으로써 작가의 내면세계와의 화해를 시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 다짐해본다. 끝으로 미셀 투르니에가 쓴 저서 ‘뒷모습’에 담긴 말이 작가의 작업에 강한 확신을 심어 주었기에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뒤쪽이 진실이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2012. – 작가 허 승희